KBS 다큐멘터리 행복해지는 법
만성불행증후군인 한국인을 위한 행복 취재 보고서
저자 : 김진혁ㅣ출판사 : 리더북스ㅣ발매 : 2011.10.31
대학교 1학년, 기숙사 룸메이트 형이 저에게 주었던 책입니다. 학교 성적과 취미에만 몰두하였던 저는 2학년이 되고 나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좀 더 빨리 읽어 봤더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이 책은 2011년 1월, KBS스페셜에 총 2부작으로 방연된 <행복해지는 법>이라는 다큐멘터리를 기획한 김진혁PD님이 집필한 책입니다. 시간의 제약을 받는 그림 위주의 방송보다는 활자 위주의 책이 다큐멘터리의 핵심을 좀 더 깊이 있게 전해줄 수 있다고 판단하여 집필하셨다고 합니다. 책의 내용은 '대한민국, 왜 행복하지 않을까?', '행복에는 기준이 없다.', '행복의 필요조건', '어디까지 원할 것인가?', '행복해지는 법' 총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습니다.
- 7년 전에 발행 된 책이라 신뢰가 안 가는 부분이 많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책에 언급된 현실 속에서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Part 1. 대한민국, 왜 행복하지 않을까?
다양한 조사 통계자료들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파트입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이 주장한 '이스털린의 역설'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소득이 일정 수준에 올라 국민의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증가가 더 이상 행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이죠. 이스털린은 이것을 입증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예로 들었습니다. 이스털린과 뜻을 함께한 학자들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행복지수 정체의 경계선으로 봅니다. 2만 달러가 되기 전에는 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행복지수도 올라가지만 이 선을 넘어서면 결코 물질적 풍요가 전반적인 삶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바로 이 경계선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행복지수의 행복은 무엇일까요? 이 책에서는 행복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키는 데 있어서 긍정심리학자들이 정립한 주관적 만족도의 정의를 행복의 개념으로 사용했습니다.
행복 = 주관적 만족도 = 감정적 만족 + 이성적 만족
OECD 평균은 71.25점,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63.2점으로 OECD 평균보다 훨씬 낮았다. 또한 행복지수 뿐만 아니라 정서균형지수는 130개 국가 중 116위, 소득 상위 40개 국가 중 39위였습니다.
다음 문항에 얼마나 동의하십니까?
답변 방법 : '전혀 그렇지 않다'(1점) ~ '매우 그렇다'(7점)
1. 나는 내 삶의 개인적 측면(개인의 성취, 성격, 건강 등)에 대해 만족한다.
2. 나는 내 삶의 관계적 측면(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등)에 대해 만족한다.
3. 나는 내가 속한 집단에 만족한다.
지난 한 달 동안 다음에 제시된 감정을 얼마나 자주 느꼈습니까?
4. 즐거운
5. 행복한
6. 편안한
7. 짜증나는
8. 부정적인
9. 무기력한
행복지수 계산법
1단계 : 다음의 수식에 각 물음에 해당하는 당신의 답변 점수를 넣어 계산한다.
행복지수 = (1+2+3+4+5+6) - (7+8+9)
2단계 : 행복지수를 백분위점수(100점 만점)로 계산한다.
행복지수 백분위점수 = (행복지수) * 1.85
다음 질문 각각 100점 만점으로 답변해주십시오.
(A) 당신은 지난 한 달 동안 '즐겁다', '행복하다', '기쁘다'라는 긍정적 감정을 얼마나 느꼈습니까?
(B) 당신은 지난 한 달 동안 '우울하다', '슬프다', '무기력하다'라는 부정적 감정을 얼마나 느꼈습니까?
정서균형지수 = 긍정적 감정(A) - 부정적 감정(B)
이렇게 타국과 비교했을 때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는 거의 바닥 수준이었습니다. 국가 평균이 이러하다면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 또한 행복하지 않을 확률이 역시 높을 수 밖에 없죠. 대한민국의 국민이 행복하지 않다는 증거는 이러한 조사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였는데, 바로 국내 자살 수치입니다. 자살은 행복의 반대에 있는 극단적 표현이죠. 1998년의 자살자수는 8622명, 2009년의 자살자수는 15413명으로 경제적 고통이 극심했던 IMF 시기보다 경제 상황이 좋아졌는데도 불구하고 자살률이 두 배 늘었습니다. 이런 통계자료가 있지만 자살은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기 때문에 분석하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자살률이 증가한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남성, 여성, 그리고 아이들의 입장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대한민국은 대학등록금은 물론 시집, 장가가는 돈까지 부모가 부담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전업주부비율이 높은 상태에서 이 부담은 대부분 남성의 몫이지요. 이러한 상태로 은퇴하게 되면 평생을 바친 일과 단절되는 것은 물론이고 점점 세상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돼가고 있다는 두려움과 몸이 여기저기가 정상이 아니라는 신호를 받습니다. 실제로 2010년 한국심리학회와 중앙일보가 공동으로 진행한 행복도 조사에서 가장 행복하지 않다고 응답한 계층이 40대 남성이었습니다. 이러한 비극이 결국 50~60대의 자살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남성들과 함께 살아가는 여성들은 과연 어떨까요?
여성은 남편이 바깥일에 열중하고 아이들은 커갈수록 각자의 길을 찾아 독립해감에 따라 점점 커지는 '빈둥지증후군', 명절이나 제사 때만 되면 음식준비와 시댁식구 뒤치다꺼리 걱정에 몸 이곳저곳이 아프고 소화도 잘 되지 않으며 감정까지 급격히 악화되어 우울증까지 찾아오는 '명절증후군', 이런 심리적 요인만 있는 것이 아닌 생화학적 및 신경내분비적 변화를 겪으며 피로감, 신경과민, 불안, 탈진 등과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갱년기 등 많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하지만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많은 여성은 이러한 상황에 적절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그냥 참는다가 60%이었습니다. 이러한 까닭인지 2010년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 여성의 자살률이 10만 명당 13.2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는 OECD 평균인 5.2명의 두 배를 훨씬 넘어서는 수치였죠.
마지막으로 아이들은 입장은 어떨까요? 아이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바로 공부에 대한 압박감입니다. 부모들은 "공부 잘해서 대학 잘 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어. 그래야 네가 행복해지는 거야"라고 말하며 조기교육이나 선행학습, 특기적성 개발 명목으로 방과 후에도 이 학원, 저 학원에 보내지요. 이렇게 순수히 자라는 아이들은 공부를 통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한 호기심을 충족하고 자기주도적으로 자신의 생활을 계획하고 실천하며 때로는 시행착오를 통해 더 나은 상태로 발전해나가는 과정 자체를 경험해보지 못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왜 자신이 공부해야 하는지, 그 목적을 알지 못하며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또 무엇을 하고 싶고 하기 싫은지조차 모르는 아이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좋은 성적도, 좋은 학벌도 얻지 못한 아이는 평생을 경쟁에서 졌다는 자괴감에 빠져 살아갈지도 모르며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공부에서의 완벽을 추구하다 보니 작은 실패나 실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Part 2. 행복에는 기준이 없다.
이 파트는 대한민국 사회에 있는 유별나거나 잘못 정형화된 기준들과 자신과 타인의 가치가 충돌할 때의 해법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한국인 대학생과 외국인 대학생에게 자신의 체중과 그에 대한 만족도에 대한 실험이 있었다. 여기서 한국 대학생은 외국 대학생에 비해 더 날씬했지만 자기 몸에 대한 만족도는 한국 대학생이 훨씬 낮았다. 이러한 이유는 대한민국 사회엔 분명하고 정형화된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생들은 남자는 키 180cm 이상, 여자는 몸무게 40~50kg 등 분명한 기준이 있었다. 반면 외국 대학생들은 '그런 주준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상적인 키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대답이 많았다.
이는 몸 뿐만이 아니라 얼굴에서도 나타난다. 얼굴연구학자, 성형외과 의사들과 함께 연예인들의 얼굴을 분석해 보았는데, 90%의 연예인 얼굴에 일치하는 공식이 있었다. 눈의 가로 세로의 비율이 1:0.4이고 얼굴은 이마, 코, 턱끝의 비율이 1:1:0.8이다. 문제는 그러한 기준으로 성형수술을 하는 데에 있다. 눈이 작아보여 쌍커플 수술하기 위해 돈을 마련해서 쌍커플 수술을 한다면 그건 매우 좁은 기준을 가진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래 우리나라는 쌍커플이 없다. 쌍커플이 없는 눈도 동양적이고 아름다운 눈이라고 생각한다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이처럼 대다수는 이상한 범주의 바깥에 있지만 하나의 기준을 정해놓고 그 기준에 끊임없이 자기를 비교하거나 타인과 경쟁하며, 그 범주에 속하지 못하면 절망한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행동할 때 서양인에 비해 '접근적 성향'을 덜 가지고 행동한다고 합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할 때 그것이 즐겁고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안 하면 혼나거나 다른 사람을 실망시킬까 봐 회피적인 동기에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요. 즉, 내 동기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남의 시선에 의해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타인의 관점에서 항상 자기를 이해하고 생각하는 습성이 배다 보면, 행복이라는 것을 평가할 때 자신의 기준보다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 혹은 타인의 기준에 맞추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행복한가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이 행복을 느끼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습니다. 자신이 행복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아야만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속의 행복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감탄하고 질투할 만한 무엇을 손에 거머쥐어야만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고 판단하는 것이지요.
이런 수동적인 행복은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게 됩니다. 그러니 어떤 것을 해도 만족하지 못하지요. 자신보다 나은 사람은 항상 있고 그 기준에 자신을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의 꿈이나 목표는 뒷전이고 오로지 남의 마음에 드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을 때, 만성적인 공허감과 억압된 분노 때문에 우울증까지 올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런 태도는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나의 기준을 정해놓고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는 태도는 어렸을 때부터 학습됐기 때문입니다.
명문대를 졸업하거나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가져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한민국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라는 하나의 가치만 강요받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의 바람에 따라 공부에만 매달립니다. 8시에 등교해 5시에 수업이 끝나면 6시부터 9시까지 자율학습을 합니다. 자율학습이 끝나면 또 대부분 학원에 가죠. 학원 수업이 11시에 끝나 집에 와서 씻고 잠자리에 들면 12시입니다. 물론 학원을 안 다니는 학생들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렇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활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볼 기회는 적어질뿐만 아니라 안타깝게도 2011년도 통계를 보면 상위 20개 대학의 입학정원은 수능 응시자의 약 7.4%였습니다. 결국 이런 교육 시스템은 극소수의 승자와 대다수의 패자가 나오는 제도이며 막대한 시간적, 금전적 투자가 필요하기에 행복해지기 힘듭니다.
기준을 명확히 하기 위해선 분위기나 타인에 의해 정립된 비합리적인 가치관이 아닌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고민하며 판단을 내려 정립한 가치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선 '타협' 혹은 '선긋기'가 필요합니다. 어느 조건 속에서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타인의 가치관과 자신의 가치관을 타협하도록 합니다. 만약 타인의 가치관이 도덕적, 윤리적 측면에서 아니다 싶거나 자신의 행복도가 매우 낮아지는 경우라면 선을 그어버리면 됩니다.
part 3. 행복의 필요조건
이번 파트에서는 행복에 대한 필요조건들과 세계 행복도 1위 국가인 덴마크인들이 사는 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행복은 감정적 만족과 이성적 만족의 합이라고 'part 1'에 기술했습니다. 여기서 이성적 만족은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인생이 가고 있다.'라고 생각하고 감정적 만족은 '매일매일 일상이 즐겁다.'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성과 감정을 동시에 만족하려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 우리는 즐겁고 잘하는 것을 하면 타인의 인정과 스스로의 성취감을 통해 자존감이 증대하기 때문이죠. 사실 거의 모든 행복도 조사결과 자존감은 행복도와 비례한다는 것입니다. 자존감을 얻는 것은 이론적으로 간단합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하면 되죠. 누구에게나 좋아하는 것과 타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집단과 가족에 묶여 자아를 키우기 힘든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그것들이 무엇인지 대부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발견하는 방법은 '생각'과 '경험'이죠.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해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보며 시행착오를 통해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현재 자신이 하는 일이 즐거운지 판단해보면 됩니다. 즐겁지 않으면 즐거워 보이는 일을 해보면 되고 즐거워 보이는 일을 모르면 다른 일을 해보며 시행착오를 겪어 성장합시다.
이번엔 국가 덴마크를 살펴보겠습니다. 덴마크 학교에는 등수가 없으며 시험은 졸업시험 딱 한 번만 봅니다. 수업은 수업 내용의 주제나 문제가 되는 것을 아이들끼리 팀을 이뤄 인터넷으로 그 것들을 검색하고 토론을 거쳐 팀별로 리포트를 제출합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생각'을 하게 되고 이 때문에 '공부 잘하는 아이'가 보이지 않아 우등생과 열등생의 구별은 물론 아이들은 공부에 주눅들 이유가 없습니다. 그저 즐겁게 공부하는 것이지요. 부모들은 아이가 공부를 못해도 혼내지 않습니다. 공부는 인생에서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많은 시간 공부를 해서 좋은 직장을 갖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청소년기를 즐겁게 보내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참고로 덴마크는 우리나라의 중학교 과정까지 모두 포함하여 초등학교가 9년제입니다. 덴마크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12시에 수업이 끝나면 방과후 학교에서 1시30분에서 5시까지 자유롭게 놉니다. '방과후 학교'의 목표는 즐겁게 놀면서 아이들에게 사회성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시간에 담당교사는 감독하거나 제지하는 역할이 아닌 같이 놀아주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물론 덴마크에도 사교육이 존재하죠. 사립학교도 있고, 부모가 원하면 개인교사를 붙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14% 정도이며 86%의 아이가 무상의 공립교육을 받으며 만족하고 있습니다.
9학년이 되면 덴마크 아이들은 진로 선택의 갈림길에 들어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3의 나이에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지요. 이 나이가 되면 부모의 간섭이 사라지고 성인 대접을 받으며 자기 진로는 자기가 정합니다. 평균적으로 실업계 고등학교로 51%, 입문계 고등학교로 49% 정도로 진학하며 최종적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약 40%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 84%인 것에 비하면 한참 낮죠. 이러한 이유는 대졸자와 비대졸자 사이에 사회적 차별이 없고, 정말 공부를 하고 싶은 아이들만 대학에 진학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덴마크는 의사든 은행원이든 벽돌공이든 똑같이 중요하다는 생각하며 수익의 차이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복지의 차이는 없습니다. 살면서 가장 필요한 것이 교육과 의료인데, 덴마크에서는 어떤 직업을 갖든 무상교육과 평생교육의 복지가 보장됩니다. 부연하자면 성인이 돼 자립할 때까지 한화로 30~90만 원 정도의 최소 생계비가 나오며 퇴직 후에는 연금으로 월급의 반 정도를 죽을 때까지 받습니다.
이러한 제도는 덴마크의 세금정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덴마크는 개인에게 소득의 50%가 넘는 세금을 부과합니다. 이 경제체제는 사회민주주의로 빈부격차가 작으며 복지가 높지만 기업, 국가 경쟁력이 약하지요. 그래서 그런지 기업에는 세금을 28% 부여합니다. 이는 세계시장에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펀드를 통해 기업진흥책을 펴고 노동시장도 유연하게 합니다. 반면 개인에게는 중과세를 하는 대신 그 대가로 평생교육, 의료, 연금을 보장합니다. 결과적으로 나라가 쓸 수 있는 돈이 많아지는 합리적인 정책이죠.
part 4. 어디까지 원할 것인가?
4번째 파트에서는 행복을 위한 돈의 가치와 행복을 유지하는 방법, 그리고 에드 디너 교수의 행복 공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경제 시장이 생긴 시대 이후부터 사람들은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 돈을 법니다. 돈은 사람의 욕망에 따라 다르지만 많으면 비도덕적, 비윤리적인 사물을 제외하고 무엇이든지 사거나 할 수 있기에 행복 느끼기 쉽습니다. 이러한 까닭인지 배우자를 선택할 때 돈을 보고 결정하거나 돈이 없어 소중한 것들이 떠날거 같다는 경제적 불안으로 돈을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하는 일이 많습니다. 굉장히 안타까운 현실이죠. 만일 돈 버는 것 자체가 즐겁다면 돈에 올인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돈이 행복에 도움이 되나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하기에 돈을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 이유는 돈으로 못 사는 것들이 존재하고 다른 이유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겸허한 자에게는 평생 가지고 있어도 다 못 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돈이 무가치한 부분이니 제외하고 두 번째 이유를 근거로 우리는 '얼마나 돈을 가지고 있으면 행복할까?'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해줍니다. 조사자료의 평균에 의하면 21억 원이 나왔습니다. 이 수치는 대한민국 상위 1%의 기준점이 되는 자산입니다. 사람들은 전체 구성원의 1%만 가질 수 있는 돈을 갖기 바라고 있으나 재밌는 사실이 발견됐습니다. 가계소득이 400만 원을 넘어서면 행복도가 돈에 비례하여 증가하지 않는 것이지요. 즉 월평균소득이 430만 원인 사람과 680만 원인 사람의 행복도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돈을 400만 원 이상 벌게 되면 친구나 가족 관계에서 그만큼 희생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돈보단 사랑, 친구, 좋은 가정, 성취감, 자존감, 건강 등 가치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가치만 보지말고 가치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를 가져야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갖고 있거나 알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복을 유지할까요? 행복은 분명 가진 것에 만족하고 겸손할 줄 아는 자세에서 기인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며 '돈이 더 있으면 좋을 텐데', '더 예쁜 여자친구가 있으면 좋을 텐데', '더 좋은 집이 있으면 좋을 텐데' 등 불만족스러운 생각을 합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것들을 손에 쥐었을 때도 과연 만족할까요? 아마 더 큰 것을 원할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행복에 익숙해지고 결국엔 무감각해집니다. 소냐 류보머스키는 이를 '쾌락적응'이라 합니다. 인간은 익숙해지는 데 뛰어납니다. 특히 긍정적인 변화에 있어서 금방 익숙해지는 것이 쾌락적응입니다.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쾌락적응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일어납니다. 대체로 시간과 노력을 얼마나 쏟아부었는가에 따라 쾌락적응의 속도가 달라지죠. 예를 들면 고시처럼 몇 년 동안 자기 인생을 바친 경우는 덤덤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길에서 우연히 만 원짜리 지폐를 주웠을 때 느끼는 행복감은 며칠 가지 않습니다. 이 이론은 성공한 사람의 행복감이 왜 사라지는지를 설명해줍니다. 쾌락적응속도는 개인마다 다르지만 그 속도를 늦춰서 행복감을 지속시키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감사'입니다. 자신의 성공이나 성취에 감사하는 태도는 기억과 감정의 망각속도를 늦춰주고, 기쁨을 다시 생각하게 해줍니다. 수많은 행복이론서에서 감사를 강조하는 것은 과학적인 이유가 있던 것이지요. 감사는 자신의 가치와 자존감을 높여주거나 스트레스, 정신적 외상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며 사회적 유대와 관계가 더 좋아지고 타인과의 비교가 억제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인들은 감사 딜레마에 빠져있습니다. 그래서 감사를 쉽게 느끼도록 에드 디너 교수의 행복에 대한 공식을 기술했습니다. 에드 디너 교수의 행복 공식은 '가진 것/원하는 것'입니다. 가진 것을 늘리거나 원하는 것을 줄이면 행복해집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좀 더 구체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되지요. 행복은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고 그것을 가질 때 옵니다. 원하는 것을 갖는다는 것은 곧 만족이며, 만족과 감사는 연결되어 있으므로 감사하는 자세를 통해 만족을 더 오래도록 합시다.
Part 5. 행복해지는 법
마지막 파트에서는 초점의 오류와 몰입 그리고 삶의 이유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초점의 오류란 한 면을 과장해서 본 나머지 전체를 오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긍정적인 측면을 집중해서 착각하는 경우를 '천국의 오류(paradise fallacy)'라 하며 반대인 부정적인 면에 집중해서 착각하는 경우를 '비참함의 오류(pathetic fallacy)'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첫눈에 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상대방의 장점에 사로잡혀 걷잡을 수 없이 사랑에 빠져들지만 이후 치명적인 단점을 접하게 되는 것이나 반대로 외견적으로는 매우 험악해보여 피했지만 사실 매우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사람이었던 경우가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개인의 주관으로 사물을 판단합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남의 행복을 자기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으며 자신의 행복도 잘못 봐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만 진짜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 행복을 가로막는 자신의 초점의 오류가 무엇인지 찾아보고 그 오류를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유일한 것이 바로 시간입니다. 삶의 질은 평생 무슨 일을 하며, 그 일을 하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인생은 유한하지만, 개인이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유한성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삶이 끝나도 자신의 열망과 꿈을 통해 이뤄낸 것들은 사람들의 생각과 현실세계 속에서 영원히 이어집니다. 크고 작은 꿈을 향해 노력하고 도전할 때 일상에서는 몰입이 생기며, 몰입을 통해 우리는 행복해집니다. 몰입을 할 때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한지 내면을 살필 여유조차 없는 순간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몰입이 끝난 후, 내면을 살필 때 비로소 찾아옵니다. 결국 삶을 훌륭하게 가꿔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어떤 일에 깊이 빠져드는 몰입입니다. 이 몰입은 근본적으로 삶에 자기 목적성이 있어야 합니다. 미시적인 측면으로는 일을 왜 하는지, 거시적인 측면으로는 왜 사는지로 보는 것이지요. 삶의 자기 목적성, 즉 사는 의미를 찾는 방법은 여러 가지있습니다. 종교, 세상에 대한 기여, 자기 발전 등을 통해서 우리는 각자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어떤 형태이든 삶의 의미를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합니다. 또 삶의 의미를 가지려면 자기 삶에 주도적이어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합시다.
댓글